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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신건강의학과 초진 시 ‘진단서’ 발급이 어려울까?

사회 인식의 변화로 우울증 등 정신건강질환에 대한 편견과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방문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있다. 이와 함께 진단서와 소견서, 진료 확인서 등 서류 발급 요구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는 다루는 질환의 특성상 초진 때 진단서 등의 서류 당일 발급이 다른 과들에 비해서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처음 방문하는 환자의 경우 내원 당일 서류를 발급받지 못해 낭패를 보는 상황에 처해지기도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 발급에는 시간이 걸린다|출처: 게티이미지 뱅크



병원 입장에서도 서류 관련 민원이 가장 곤란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왜 정신건강의학과는 초진 시 진단서 발급이 어려울까?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권순모 원장(마음숲길정신건강의학과의원)과 함께 자세히 알아보자.



환자의 병명 진단과 의사 소견 내비치기 다소 어려운 점 있어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 처음 내원해 소견서나 진단서를 바로 발급받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특성상 바로 환자의 병명 등을 진단하거나, 의사의 소견을 내비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항을 전화 예약 문의 때 충분히 설명해도 내원 당일 진단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 분들은 충분히 설명하면 납득하지만, 간혹 몇몇 분들은 답답함에 화를 내시기도 합니다. 이는 분명 환자가 진단서가 급하게 필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서류 발급과 관련해 환자의 이해를 돕고자 정신건강의학과 발급 서류, 특히 진단서, 소견서, 진료 확인서 등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진단서? 소견서? 진료확인서?

먼저 병원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원칙적으로 '의료기관' 및 '법원', '경찰서', '주민센터' 등 다른 기관에서 의사의 소견을 참고하도록 발부되는 공식적인 서류는 진단서 하나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진단서와 혼동하시는 소견서는 환자의 질환이나 증상에 대해 다른 의료진이 진료에 참고하도록 작성된 서류입니다. 하지만 보험회사나 환자의 직장에서 진단서가 아니라 소견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소견서가 진단서의 용도로 발급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이때는 법적으로 소견서의 형태로 발부는 되지만, 진단서의 의미를 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진단서가 소견서의 형태로 발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 외에 진료확인서는 그날 진료를 본원에서 받았다는 확인을 하는 것으로 진단명이나 소견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 발급에는 시간이 걸리나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환자의 심리적 어려움을 다룹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 환경'이나 '스트레스', '대인관계 문제'가 증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도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환자의 증상 조절과 증상 개선을 위해서는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자극 감소와 스트레스 해결을 위한 접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전문가의 소견을 담은 진단서의 발급입니다. 대부분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진단서 등의 서류 발급도 환자의 증상 조절과 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초진 시에 자세한 면담과 여러 자가 척도들을 (본인 스스로 체크하는 검사) 통해 우울, 불안, 분노 등의 감정 문제나 수면이나 알코올, 신체 증상 등 환자의 증상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측면에 대해 평가를 합니다. 여러 자가 척도는 자신의 주관적인 어려움과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고 이는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의 자가 척도는 특성상 혈액검사나 영상검사 (x-ray, 초음파, ct, mri) 등을 사용해 빠르고 뚜렷하게 증상과 질환명을 진단할 수 있는 내과나 정형외과와 같은 타과에 비해 객관적인 부분이 부족하여 진단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간의 관찰이 꼭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우울감을 비롯한 우울장애에서 보이는 증상을 호소하며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방문한다면, 의사의 경험과 판단에 의해서 우울장애에 준하는 치료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단서에 해당 환자의 질환이 우울장애로 의심된다고 기록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상기했다시피 진단서는 정부기관이나 법원 등 타 기관에서 참고하는 공식적인 문서입니다. 따라서 진단서에 우울장애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기재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충분한 근거는 몇 차례의 면담이나 몇 가지의 자가 척도만으로는 다소 부족하기 때문에, 의사가 환자의 우울감이나 불안감, 스트레스에 대해서 공감할 수는 있으나 환자가 우울하다고 해서 우울증이라고 진단한다면 진단서의 객관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초진 시 진단서 서류 발급이 힘듭니다.



그래도 오늘 써 주세요!

진단서는 객관성을 담보하여 의심되는 진단명과 의사의 소견을 담는 문서입니다. 사실 환자가 꼭 원한다면 처음 진료 시에도 진단서를 써 드릴 수는 있습니다. 다만, 아직 진단을 위한 관찰이 필요한 상태이므로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스트레스 반응 등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이 아니라 z03 코드 등의 “의심되는 질병 및 병태를 위한 의학적 관찰 및 평가”와 같은 진단과 함께 경과 관찰이 필요하다는 간단한 소견 정도가 발부될 것입니다. 하지만 진단서가 필요한 많은 환자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단명과 현재 상태에 대한 치료적 접근에 대한 소견이 필요한 경우가 많으므로 받으나 마나 한 진단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진료확인서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진단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신과 질환이 다양하기 때문에 진단에는 질환마다 각기 다른 시간이 소요됩니다. 또한 같은 질환이라고도 환자가 보이는 증상의 경중이 다양하기 때문에 진단에 걸리는 시간이 다릅니다. 가령 정신지체에 대한 평가는 지능 검사와 다른 배제 질환들에 대한 평가 및 면담만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진단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진단서는 의사 개인의 전문적인 소신에 의해 작성되는 문서이니만큼 의사마다 평가 기간이나 판단이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 대한 전문가의 소견이 천차만별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객관적인 검사나 경과 관찰이 안되는 상태에서는 섣부른 판단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정말 빠른 진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종합 심리검사 등의 좀 더 자세한 검사와 충분한 면담을 통해 진단서를 발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통 종합심리검사를 수행하는데도 몇 주 간의 대기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비용 또한 적지 않으며 결과가 환자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도움말= 하이닥 상담의사 권순모 원장(마음숲길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